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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카타 우파니샤드

관리자 | 2012.05.08 15:15 | 조회 3199
요가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고 알려진 카타 우파니샤드입니다.
비교적 사람들에게 친숙한 우파니샤드라고 볼수 있고.

머리와 심장에 대한 연결성에 관한 설법은
까발라바띠 명상법과 깊은 연관성을 느끼게 합니다.





카타 우파니샤드



나치케타스(Nachiketas) 이야기

브라만 사제인 바쟈스라바사는 다음 생에 천국에
태어나기 위해 그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하였다. 그에게는 나치케타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늘고 병든 소들을 나눠
주는 것을 보고 어린 나치케타스는 이렇게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너무 늙어서 풀도 제대로 뜯어먹지 못하고, 우유도
잘 짤 수 없고 새끼도 낳지 못하는 저런 암소를
주다니... 우리 아버진 아무래도 천국에 가긴 틀렸어."

어린 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전 누구에게 줄 거예요 ?"
아무 대답이 없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두 번 세 번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버진 그만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해 버렸다.
"너는 염라대왕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나치케타스는 자신에게 말했다.
"오늘 아버B4줄테니 말하라고 했다. 그는 첫 번째
소원으로서 다시 집에 돌아가게 해 달라고 했다.

염라대왕은 그의 첫 번째 소원을 쾌히 들어줬다. 그는
두 번째 소원으로서 <불의 의식>에 대해서 물었다.
이 세상을 유지시키고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하는 그리고
우리의 심장 속에 숨어 있는 그 생명의 불에 대하여,
그 불의 신비한 힘에 대해 물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불의 의식과 불의 신비한 힘에 대해 모든 것을 일러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 번째 소원으로서 다음을
물었다.

나치케타스 : 내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내세
따윈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염라대왕이여, 내세란
정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없는 것입니까 ?

염라대왕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들 조차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치케타스여, 이 미묘한 문제로 나를 곤란하게
하지 말고 다른 소원을 말하라.

나치케타스 : 염라대왕이여, 당신처럼 위대한 스승을
나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소원은 오직
이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얻는 것입니다.

염라대왕 : 나치케타스여, 그러지 말고 부디 다른 소원을
말하라. 이를테면 부귀영화라든지 자손의 번영, 또는
수명장수 등이 있지 않은가 ?
왕이 되고 싶은가 ? 드넓은 영토를 가지고 마음대로
호령하고 싶은가 ? 어서 말해라.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주리라.

젊은이여, 이 세상의 욕망을 모두 충족시켜 주리라.
예쁜 여자와 음악, 그리고 그대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갖가지 환락을 주리라.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만은,
내세에 대해서만은 제발 더 이상 묻지 말아 다오.

나치케타스 : 염라대왕이여, 이 모든 환락은 이제 머지
않아 사라져 버리는 것. 감각 속에 넘치는 이 활력도
이제 머지 않아 다 소모되어 버리는 것.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은 죽고야 마는 것. 이 환락과
부귀영화는, 그리고 수명장수는 염라대왕이여 당신이나
가지시기 바랍니다.

돈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염라대왕
이여, 내가 일단 당신을 본 이상 여기 부귀영화와
수명장수가 무슨 소용 있나이까. 다른 소원은 없고 오직
죽음에 관한 해답을 얻고 싶을 뿐입니다.
이 덧없는 세상에서 저 불멸의 빛을 느꼈다면 여기 그
누가 수명장수를, 이 거짓 아름다움을 갈망하겠나니까 ?
염라대왕이여, 말해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 죽음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얻는 것입니다.

위대한 비밀

염라대왕은 나치케타스야말로 진정한 구도자임을 알고
그의 위대한 비밀을 말하기 시작했다.

염라대왕 : 여기 <선>의 길과 <쾌락>의 길이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우리를 속박한다. <선>의 길을
가면 좋은 결과가 있고 <쾌락>의 길을 따르게 되면
인생의 지고한 목적을 잃어 버리게 된다.

<선>과 <쾌락>은 똑같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현자는 <선>을 택하고 어리석은 이는 <쾌락>을 택한다.
나치케타스여, 그대는 쾌락의 길을 벗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려드는 이 부귀영황의 올가미에서 그대는
마침내 벗어나고야 말았다.

무지의 길과 지혜의 길 사이에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치케타스여, 지혜의 길을 가는 자여, 이제 이 세상의
어떤 환락도 그대를 유혹하지 못하리라.
어리석은 이들은 어둠 속에서 살면서 자기자신은 제법
현명하고 박식하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더
빗나간 길을 가고 있나니 눈먼 소경이 또다른 장님을
이끌고 가는 것과도 같다.

쾌락과 재물에 눈이 먼 사람에겐 내세에 관한 의문은
전혀 일지 않는다.
"오직 이 세상일 뿐, 내세 따윈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꾸자꾸 나(염라대왕)
의 지배 아래로 들어오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트만(Atman)에 대한 말조차 듣지
못하고 있다. 설령 아트만에 대해 들었다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아트만을 이해한 사람, 그는 축복받은 이다.
아트만을 깨달은 사람, 그는 더욱 축복받은 이다.

아트만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 그는 아트만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 왜냐면 아트만은 결코 언어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트만과 하나로 된 사람은
아트만을 가르칠 수 있다. 아트만은 미묘하여 언어나
논리를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트만에 대한 이 지혜는 논리나 논쟁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다. 오직 아트만을 체험한 스승에 의해서만이
그것에의 체험은 가능하다. 나치케타스여, 그대야말로
진정한 구도자이다.

나치케타스 : 나는 알고 있나이다. 이 세속적인 富를
통해서는 결코 저 영원의 차원에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나이다.
염라대왕이여, 당신이 가르쳐 준 저 영원의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세속적인 이 모든 부귀영화와 결별했나이다.

염라대왕 : 욕망의 무한한 충족욕, 권력에의 야망과
성직자의 권위, 그리고 초능력 등. 나치케타스여, 그대
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들을 그대는 미련없이 버렸구나.
저 깊은 명상을 통하여 시간과 감각의 차원 너머 이 심장의
동굴 깊이 숨어 있는 그 아트만을 깨달은 이는 이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멀리 떠난다.

나치케타스 : 염라대왕이여, 그대가 깨달은 것을 모두
가르쳐 주십시오. 옳음과 그릇됨을 넘어선 것, 원인과
결과를 초월한 것, 그리고 과거와 미래마저 넘어선 바로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염라대왕 : 이 모든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 저
모든 수행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 그리고 모든 명상가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저
성스러운 음절 <옴(OM)> 이니라.
<옴>은 브라만이요 가장 높은 경지니 이 <옴>을 아는
자는 그가 바라는 모든 걸 얻게 된다.

아트만을 깨달은 자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아트만은 원인과 결과를 초월하였으며 영원불멸하나니
이 육체가 죽을 때도 저 아트만은 결코 죽지 않는다.
죽이는 자가 '죽인다'고 생각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자가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둘은 모두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이 육체의 근원으로서의 아트만은
죽일 수도 없고 또 죽임을 당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것보다도 더 작고 가장 큰 것보다도 더 큰
아트만은 이 모든 생명체의 심장 속에 숨어 있나니
슬픔으로부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은 본다.
神의 은총에 의해서 아트만의 위대성을 본다.
그(아트만)는 여기 앉아 있으면서 멀리까지 나아간다.

그는 여기 누워 있으면서 이 모든 곳을 두루 여행한다.
나 자신 이외에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 기쁨이면서
동시에 슬픔인 그를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육체 속에 있으면서 육체가 없으며 변하는 것 속에
있으면서 변하지 않으며 이 누리 두루 편재해 있으면서
가장 위대한 것, 그것(아트만)을 깨달은 이는 결코 이
슬픔에 젖지 않는다.

경전의 공부나 학문, 지식에 의해서는 결코 그것(아트만)
을 깨달을 수 없다. 그것에 의해서 선택된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나니 오직 그 사람에게만 그것은
모습을 드러낸다.

악행을 포기하지 않고는, 감각을 절제하지 않고는,
그 마음에 부는 바람을 잠재우지 않고는, 명상을
실습하지 않고는, 그대는 결코 아트만을 깨달을 수 없다.
지식에 의해서는 결코 아트만을 깨달을 수 없다.

근엄한 성직자들도, 오만한 통치자들도 그(아트만)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는
저 죽음조차도 일종의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 아아,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어디 있는지를....

두 개의 自我

여기 심장의 공간 속에 지바트마(jivatma, 자아)와
파라마트마(paramatma, 초자아)라는 두 개의 자아가
살고 있다. 지바트마는 희비애락의 파도를 타고 있지만
그러나 파라마트마는 지바트마를 저만치서 지켜보고
있다. 지바트마는 어둠 속에서 고뇌하고 있으나
파라마트마는 빛 속에서 조용히 지바트마를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깨달은 이들은 이 둘을 빛과 그림자로
설명하고 있다.

아트만은 <수레를 타고 가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이 경우 육체는 <수레>, 붓디(buddhi, 지각력)는 <마부>,
마음은 <말고삐>이다.

감각기관은 <말>, 감각기관의 대상은 <길>이다.
아트만과 감각과 마음이 결합할 때 현자는 이것을 일러
(슬픔과 기쁨을) <경험하는>(경험의 주체)라 한다.

붓디가 절제되지 않은 마음과 연결되면 그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면 감각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통제할 수 없게 된 감각은 미쳐서 날뛰는 말과 같아서
더 이상 마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붓디가 절제된 마음과 연결되면 판단력이
선명해진다. 이제 감각은 붓디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고 통제된 감각은 마치 길들여진 말과 같아서 마부의
명령에 잘 따른다.

붓디라는 <마부>가 있는 사람은 마음이라는 <채찍>을
굳게 쥐고 마침내는 여행의 목적지에 이른다. 저 최고의
경지에....

모든 존재 속에 있는 아트만은 결코 그 자신 스스로가
현현하지 않는다. 오직 미묘한 관찰자의 그 예리한 지혜의
빛을 통해서만 감지된다.

소리도 없고 지각할 수도 없으며 형태도 없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 맛도 없고 냄새도 없으며 영원한 것,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그리고 위대한 것보다도 더 위대하며
영원불변한 것, 그것(아트만)을 깨달은 이는 이제 죽음의
아가리로부터 벗어나리라.

아트만의 초감각성

염라대왕 : 스스로 존재하는 자(브라만)는 감각의 문들을
밖을 향해 열어 놓았다. 이 때문에 인간은 자기자신의
내면은 보지 못하고 외부의 세계만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저 불멸을 향하고 있는 현자는 그 시선을 자기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그 자신의 가장 깊은 본질(아트만)을 본다.

어리석은 이들은 오직 외적인 쾌락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 죽음(염라대왕)의 덫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현자는 저 불멸의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쾌락을 더 이상 탐내지 않는다.

아트만을 통해서 우린 형태를 식별하고 맛을 알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감촉을 느끼고 또 육감적인 쾌락을
느낀다. 그러므로 아트만이 없으면 우린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고 식별할 수도 없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아트만)이다.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 우리가 모든 대상을 느낄 수 있고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이 아트만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이 누리에 두루 충만해 있으며 무한광대한 이 아트만을
깨달은 이는 더 이상 비탄해 하지 않는다.

그 자신의 영혼이며 행위의 결과를 경험하는 자,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으며 과거와 미래의 神인 이 아트만을
깨달은 이는 이제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이것이다.

브라만은 그 자신의 열기(tapas)로부터 태어났으며
생명의 물보다 먼저 태어났다. 브라만은 이 모든 원소
속에 깃들어 있으며 심장의 동굴 속에 숨어 있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브라만은 모든 신들의 영혼이며 호흡과 함께 태어났다.
브라만은 이 모든 원소와 함께 태어났으며 모든 존재의
심장 속에 들어가 그 속에 살고 있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모태 속에서 잘 보호받고 있는 태아처럼 아그니(火)는
두 개의 부싯돌 속에 숨어있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이
아그니에게 공물을 바치며 기원을 한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브라만)로부터 태양은 떠오르고 또 그에게로 태양은
진다. 그리고 모든 신들은 그에게 예속되어 있다.
그를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나니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저기 있다. 저기 있는 것은 모두
여기 있다. 여기에서 차별을 보는 이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길이 떠돌게 된다.

오직 순수한 마음에 의해서만 브라만은 감지되나니
브라만 속에서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이 속에서 차별을 보는 이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떠돌게
된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영혼(아트만)은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유리의 심장
속에 깃들어 있다. 그는 과거와 미래의 지배자이다.
그를 깨닫게 되면 이제 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영혼은 마치 연기 없는 불꽃과도
같이 빛나고 있다. 과거와 미래의 지배자인 그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변치 않는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저 빗물이 산의 골짜기를 따라 사방으로 갈라져 흘러
내리듯 브라만과 다른 것으로서 이 현상을 보는 이는
이 현상계의 차별상을 따라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맑은 물에 맑은 물을 부으면 마찬가지로 청정한 물이
되듯 나치케타스여, 깨달은 이의 아트만도 마침내
브라만과 하나가 된다.

참된 아트만

나치케타스여, 내 지금 그대에게 이 영원한 브라만
(아트만)에 대해서 말하리라. 그리고 죽은 후에
아트만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서도 말하리라.

현세에서 행한 그 행위(karma, 業)에 따라, 그리고
영적인 자각의 수준에 따라 어떤 이는 죽은 다음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인간의 육체로 다시
태어나고 또 어떤 이는 풀이나 나무로 태어나기도 한다.

아트만은 잠잘 때조차 깨어 있으면서 그가 원하는
것들을 꿈을 통해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빛이며 브라만이며 다시 영원불변하는 자다. 이 모든
세계는 남김없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누구도
그의 영향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불(火)은 하나지만 그러나 그 땔감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아트만은 하나지만
그러나 이 하나인 아트만이 각기 다른 존재 속에
들어감으로써 각기 다른 아트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모든 존재의 내부에 머물면서
동시에 그는 모든 존재의 외부에 충만해 있다.

저 하나인 바람이 크고작은 구멍 속을 지나가면 마치
많은 종류의 바람이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다른 소리가
난다. 저 하나인 아트만이 각기 다른 존재의 육체 속에
들어가면 그 각기 다른 존재의 육체적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아트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모든 존재의
내부에 머물면서 동시에 그는 모든 존재의 외부에
충만해 있다.

저 태양빛은 그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는다. 모든
존재 속에 머물고 있는 아트만은 이 세상의 어떤
불행에도 오염되지 않는다.

모든 존재의 아트만인 그 유일의 지배자(브라만)는
그의 유일한 모습을 다양하게 분화시킨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 속에서 그를 감지한 이들은 영원한
행복감을 느낀다.

이 덧없는 것들(현상계) 속에서 영원하며 이 사유의
근원이요 절대 유일자인 그(브라만)는 이 삶의 활력인
열정의 파도로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
속에서 그를 감지한 이들은 영원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곳에서는 태양도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달빛도 별빛도 전기불도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고
이 세상의 어떤 불빛도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브라만)는 모든 존재에게 빛을 주는 빛의 원천이니
그가 빛을 발하면 비로소 모든 것들이 따라 빛난다.

생명의 나무

여기 태고적의 한 나무가 있으니 뿌리는 위로 뻗고
가지와 잎은 밑으로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브라만이며
불멸이니 이 세상 전체가 이 나무 속에 있다. 이제 그
누구도 이 나무를 벗어날 수 없나니 젊은이여, 그대가
물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브라만으로부터 비롯
되었으며 브라만의 호흡으로 물결치고 있다. 브라만은
경외로운 자이니 그는 번갯불의 장검을 휘두르며
호령하고 있다. 그를 알게 되면 우린 이제 저 불멸에
이르게 된다.

그에 대한 경외로움으로 하여 불은 타오르고 그에 대한
경외로움으로 하여 태양은 빛난다. 그에 대한 경외로움
으로 하여 바람은 불고 그에 대한 경외로움으로 하여
죽음은 자신의 궤도를 가고 있다.

이 육체를 벗기 전에 그를 깨닫게 되면 해탈에 이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영혼의 방황은 계속된다.

그(아트만)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므로 그 누구도 그를
볼 수 없다. 명상을 통해서만이 오직 명상의 그 예지를
통해서만이 그는 감지되나니 그를 깨닫는 자는
불멸하리라.

아트만은 언어를 통해서 포착할 수 없으며 아트만은
마음(사고기능)을 통해 포착할 수 없으며 아트만은
시각(눈)을 통해서 포착할 수 없다. <그는 존재한다>는
이 직관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를 포착할 수 없다.

<그는 존재한다>는 이 확신을 통해서 우린 그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의 이중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린 그를
이해할 수 있나니, <그는 존재한다>는 이 확신을 통하여
그를 이해할 때 그는 그 자신의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대 심장 속에 잠복해 있는 이 모든 욕망이 사라져
버릴 때 바로 그때 순간적인 것은 불멸이 된다. 그대는
여기에서 브라만을 깨닫게 된다.

그대 심장 속에 있는 이 모든 매듭(무지, 욕망)이 풀릴 때
순간적인 것은 영원한 것이 된다. 이것이 가르침의
끝이다.

이 심장 속에는 101개의 동맥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한 개의
동맥이 두개골을 뚫고 위로 치솟는다. 죽음의 순간 우리는
이 동맥을 따라 저 불멸의 곳에 이른다. 그리고 나머지
동맥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 육체를 빠져 나간다.

엄지손가락 크기만한 존재는 아트만으로서 이 심장 속에
살고 있나니 우린 굳은 신념을 갖고 그를 이 육체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저 풀잎으로부터 연한 줄기를 가려내듯.
그는 순수며 불멸, 그 자체다.
그는 순수며 불멸, 그 자체다.

염라대왕으로부터 이 가르침을 받고 명상에 전념한
나치케타스는 마침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저 브라만에
이르렀다.

나치케타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 가르침에 따라 정진을 계속하게 되면 또한 저 최고의
경지인 브라만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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